무비랜드에게.
안녕하세요 무비랜드에 주니어 디자이너로 지원하는 박현지입니다.
첫 영화의 기억으로 이 편지같은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홉살무렵 가족끼리 다같이 봤던 쇼생크 탈출과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꼭 봐야할 탑100같은 영화들이 먼저 기억납니다. 재밌다고 느껴서 첫 기억이 되었을테니 제 영화에 대한 기준은 이 두가지로 잡힌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번역 일을 하셨고, 항상 노트북 두 대를 켜 하나로는 번역을, 하나로는 영화를 틀어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재밌게 봤던 영화를 주말에 안방에서 가족 넷이 다같이 보았어요. 그 시간 외에는 일하거나 영화만 보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제가 하는 디자인과 사진 작업의 미감은 대부분 그때의 경험에서 출발한 것 같아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영화관에 속해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씨네필이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름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영화를 4,000편 넘게 본 사람도 만나보고 일주일에 몇 편씩이나 보는 사람도 만나게되어 한달에 몇 편 보는 저는 자랑스럽게 씨네필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담은 아름다운 종합 예술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좋아하고자 노력하고 있어 씨네필 지망생정도라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누군가 물어보면 하나는 못 고르고 위플래쉬, 월플라워, 소공녀, 라따뚜이를 좋아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영화 많이 보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 리셋 시켰어요. 저저번달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저번달엔 드라이브 마이카가 좋았고, 앞으로 한달 동안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애프터 양일 예정입니다.
중학교때 미술 입시를 시작하며 10년정도 미술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뻔한 미대생의 답변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좋았어요’ 이지만 돌이켜보면 그리는 것보다도 그린 그림을 친구와 선생님, 부모님과 같이 볼 때를 더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각을 전공했지만 순수 예술 작가가 아닌 디자인을 하게된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좋다고 생각한 것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작업물들을 만들고, 그걸 통해 정말로 사람들이 그 대상과 가까워지는 경험을 몇 번 해보니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구나 라는 감각이 생겼어요. 관심이 없는 분야라도 디자인을 통해 접해보고 나누는 것도 또하나의 재미였고요. 본전공인 조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각을 하며 배웠던 세밀하게 관찰한 뒤 붙이거나 덜어내는 개념은 어디에서나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오히려 불안했던 20대 초반 진로 찾기 과정에서 선택했던 방법은 흥미가 가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한 뒤 소거법으로 지워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하고 싶었던 카페나 영화관 알바도 해보고, 사진 어시던트, 영상 미술팀, 디자인 인턴 등을 해보며 어떤 일이 잘 맞고 안맞는지를 알아냈습니다. 무비랜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무비랜드에서 관객이 영화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